겨울여행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마치 꿈을 꾼 듯해.
언니 둘과 여주로 출발,서이천을 나와 신둔면 근처 마을을 둘러 보니 온통 도요지로세.여주에서 나고 자랐지만 도자기만드는 곳을 보는건 그닥 기회가 없어 내심 늘 궁금하던차.
길가에서 담배피며 휴식하는 도공의 뒤를 �아들어가 작업실 구경을 하게 되었다.
주방에서 쓰이는 질그릇을 만드는 작업실이 마치 공방 같았다.고가의 상품들로 보인다. 사지도 못할 거면서 넌지시 가격을 물어보니 역시나...
창고안을 둘러보니 흙으로 빗기,굳히기,다듬기,약바르기,굽기의 사단계가 한눈에 들어왔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젊은이 한쌍이 한창 작업중이다.
문득 , 화실에 가서 음악들으며 그림그리던 시간들이 그리워진다.점심먹고 한 두시간 뒤가 가장 집중이 잘 되는 타임이다.하루가 저물어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바빠져서인지 수다와 잡생각떨치며 그림에 몰두하게 되는 신기한 타임이다.내가 선곡하지않고 무작위로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듣는 기쁨이 크다는 생각도 늘 하면서 말이다.지금 스승님이 많이 아프셔서 그림아닌 딴짓을 많이 하고 돌아다니고 있지만...(여재식 선생님 건강하세요ㅎㅎ)
따스하고 행복한 작업실 분위기에 잠시 취하다가 정신차리고,젊은한쌍을 신혼부부로 착각했더니 동료라고 한다.뜻이 같아 같은 일을 하기로 의기투합했겠지.이들은 먹고 살기 괜찮을까?
그림을 그리면서부터 예술을 하는사람들만 만나면 난 이 생각을 한다. 내가 만난 예술가들은 밥벌이가 영 신통치 못해 생계가 끔찍히도 어려운이들만 보았기에 ...
이들이 생계가 어렵지않고 밥벌이 넉넉한 생활하기를 바라며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다음은 청자요를 둘렀다.
해강선생 제자이이다가 독립하신 지천선생요라고 한다. 아직은 젊으신 분이다. 눈호사하고 소품으로 충동구매 한탕하고 다시 이천 여주를 골골이 여행했다.
이천과 여주 면소재지의 리단위마을을 샅샅이 둘러보니 내고향 참 좋더라.
변화라면 여주의 산은 야산이라 골프장천지가 되었다. 지금도 이산 저산들은 마치 산들이 이발하듯이 계속 나무들이 깎여나가고 있다. ㅉㅉㅉ
골프장을 찾는 손님들 편하라고 길은 쭉쭉빵빵 잘 닦여지고.
나 5학년 말에 서울로 유학가서 빨간날만 되면 난 여주로 튀어내려왔다.학교 다닐 때는 길도 좋질 않으니 차가 자주 없어서 시간에 맞추어 다니기가 끔찍했다.그때를 생각하면 불편의 끔찍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
그러고 보면 골프장 덕에 이렇게 길이 잘 닦여진건 진짜 너무너무 좋다. 랄랄라... 내가 가고싶은곳,내가 가고싶은 때 를 구애받지 않고 다닌다는 것이 너무너무 신기해라 하면서말이다. 늘 차시간에 ?기며 다니던 과거를 알기에 이 좋은길과 내차에게 무지무지 고마울 뿐.길과 차가있어 난 그저 행복하다.특히 여주에 올땐 내 차가 더욱 고맙다.
골프장은 지역주민들에게 많은 혜택이 주어진단다. 학생들 장학금부터,주민들 일자리창출,교통의 편리함등등.그들에게 너무나 절실한 많은 것을 주니 어찌 '골프장아 어서와'를 않하겠는가?
골프장하면 환경단체들이 주장하는 여러가지 문제점을 나도 늘 걱정했지만 골프장이 이 가난한 시골 마을에 경제 이득을 주어 마을에 활기가 넘치는 이 상황을 어찌 무시할 수가 있는가? 무시 할 수 없는 일이다.
여주에 오면 무지무지 바쁘다. 시골로 낙향하신 작은어머니는 우리가 내려가면 시간시간 이벤트를 벌이신다.
우선 세조카딸들 몸 지지라고 황토방을 지글지글 끓도록 굼불을 지펴놓으신다.
옛날에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보내던 생활로 돌아간듯이 화로가 등장하고 먹거리를 죄다 내오신다.이곳에서 나는 먹거리는 모두 요즘 인기있는 유기농이다. 그래서 농사를 지으시면 모두 반타작이시다.
우리 세자매는 또 작은어머니의 모든 시골스럽고 약간은 촌스럽고 별스런 음식에 푹 빠져버린다.
여기서 나의 잡생각 돌출,세상돌아가는 이치는 시소와 같다.시소처럼 수평상태원리를 난 철칙으로 믿는다.한쪽으로 넘칠때 기울어지는 시소.
이런 융숭한 대접은 작은어머니의 힘든 노동의결과로 육체의 고통을 낳는다.그리하여 또 와라 어서 내려와라 하시지만 작은 어머니께 죄송해서 자주 못간다.
이곳은 목장이 많다. 주로 소를 키우는데 사슴목장이 있다는 말에 입시생들 몸보신해준다는 이유로 동창친구에게 물어물어 사슴농장에 들러 녹용을 어렵사리 구해왔다.
그예쁜 사슴들이 일제히 우리를 쳐다보는 얼굴이 눈에 선하다.예전엔 백만원하던 사슴이 지금은 이십만원 정도란다.봄부터 뿔이 나서 3개월 자라면 5,6월에 잘라준단다.겨울이 되면 발정기라서 숫놈끼리 힘싸움을 하여 서로 상처가 나기 때문에 잘라줘야한단다 그덕에 우리가 녹용을 먹는거란다.
다음은 사과농장, 서울서는 느낄 수 없는 푸짐한 인심까지 얹어 사과를 듬뿍 사왔다.친정에 오면 내지갑은 풍덩풍덩 새나간다. 친정에 오면 내가 아주 부자였으면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시골에서 고생하시는 분들께 돈으로라도 내마음을 전해드리고 싶은 얄팍한 도시 인심이지.늘 싸게만 사려는 나의 얄팍한 인심이 농부들께 미안하기도 하다. 여름엔 복숭아를 열심히 사다 날랐지...
마침 초등학교 동창모이이 있다하여 친구들도 만났다.
주차장에 가득세워진 차가 내 기를 눌렀다.헉 차들이 왜 이리도 좋은지 10년 넘어간 내 차가 무색해지네. 시골와서 서울산다고 자랑하다간 큰코 다치겠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누구는 소를 키워 성공했고 누구는 장사하여 성공했고 누구는 신랑이 돈을 잘 벌어 성공했다는 소문이다.
요즘은 차로 그사람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는시대라는것이 동창회를 가보니 나부터 역시 그렇다.나 속물.
언니의 받침으로 명품아울렛도 잠시 거쳐가고 사우나 예찬론자인 큰언니를 위해 참숯찜질방도 다녀오고 무지무지 바쁘다.
시골집을 뒤로 바리바리 싸가지고 서울로 출발, 작은어머니 작은아버지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를 뒤로하고 부웅-!
서울로 오면서 우린 또 여주 이천을 해가 떨어질때까지 골골이 다니다가 막상 이천 쌀밥을 한번도 먹어보지 못해 관리차원에서 쌀밥집 둘러 포식 .
어두워져서야 고속도로 진입하여 서울도착.
짐을 푸는 도중 아련히 눈에 들어오는 두가지 물건이 있다. 달걀과 들기름이다.
내가 우리 아이들 키우는 정성보다 더 정성껏 키우시는 닭이 준 선물 달걀을 드시지않고 ,모아모아 서울 손님들 챙겨싸주시는 그 마음이 싸하다.그렇게 하지마시고 작은어머니 건강생각해서 드시라고 매번 말씀드리지만 번번히 빈말이 될뿐 ...
직접 짜서 주신 들기름에 노오란 (서울 계란과는 비교 안되는 예쁜 노란색이다)달걀후라이 해서 아이 밥상에 얹어 놓아주면 아이입으로 예쁜 노란달걀이 쏘옥 들어가 없어져버린다.아이허무타.
내고향 여주안녕이다.